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낸 미국의 기만에 모순은 향한다. 일본의 반미 보수파의 재대두와 아베 암살

수령 아베 전 총리를 총격 사건으로 잃은 자민당 청화회(아베파)의 아베 측근 그룹이 우크라이나 정세를 둘러싸고 정면에서 미국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을 일중전쟁에서 중국 국민당 담개석 총통에 비추어 일본의 중국 침공이 진흙을 뚫은 것은 장개석 뒤에 있던 미국의 모략에 의한다고 본다. 이들에 따르면 “ 일본은 대동아전쟁으로 일방적으로 중국을 침략했고 마침내 미국이라는 민주주의 국가에 전쟁을 도전해 왔다. 이런 편견에 따라 부당하게 일본을 심판한 것이 도쿄 재판 있다." 그리고 「일본의 보수파는 앞의 전쟁에서의 「미영=선 일본=악」이라고 하는 2원론을 거부하는데, 현재의 우크라이나 문제가 되면 「우크라이나=선 러시아=악」에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고,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이것은 도쿄 재판의 시인으로 이어진다”고 주장. 우크라이나 정세를 둘러싼 미영 의 그늘 부분을 파악하고 그 기만을 간파하고 호소하고 대만 유사를 비롯해 일본이 일방적으로 미국에 이용되지 않도록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시사하고 있다.
■분쇄된 일본의 전후 체제
본 블로그는 2021년 2월 18일 게재 논고 「보수 『주류』 역전과 미국의 압력 반공 강국과 청화회 지배 1」을 범죄로, 미국 네오콘을 핵으로 하는 호전적인 미국 지배층은 2001년의 9・11과 아프간 침공,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보수 방류」기시 신스케가 이끄는 복고색의 진한 자민당 타카파 인맥의 후예인 청화회(현안 배파)를 중용해, 동회 소속의 숲 키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를 차례차례 총리 총재로 했다. 후쿠다를 제외하고 전원이 네오콘의 '테러와의 싸움'에 과잉까지 동조했다.
그리고 '민주당 정권: 악몽의 3년'을 호소하고 부활한 제2차 아베 정권이 자위대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부여해 이를 미군의 보완부대로 삼았다. 총탄에 쓰러진 아베의 유산은 미군을 대신해 중국 본토를 향해 중국군의 지대함 미사일을 요격하는 500발의 미제 토마호크의 배치이다. '요격', '반격'이란 말을 피하고, 실제로는 미국 이 추진하는 '통합 방공 미사일 방위(IAMD)'의 일환으로 선제 공격도 가능한 중거리 미사일을 중국 연안에 근접하는 남서 제도에 배치한다. . 이시가키섬에서 2023년에 완성되는 자위대 기지에 의해 「적 기지 공격 능력」은 정돈된다.
이것에 의해 일본의 전후 체제의 핵심을 이룬 전수 방위의 이념을 깨끗하게 분쇄하는 「선제 공격 능력」은 서태평양상의 미군 함선과 재일 미군 기지를 방어하기 위한 억지력이며, 일본의 일반인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환언하면, 그것은 제1 열도선의 안쪽을 이루는 남중국해 · 동중국해 · 일본해 에의 미 해군 · 공군 의 침입을 저지, 배제하는 중국군의 해상 군사 전략 “ 접근 저지·영역 거부(A2/AD)” 의 타파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 사용한 아베 이즘
그런데, 청화회· 아베파라고 하는 과거의 「보수 방류」파벌은 일본 점령의 역 코스를 결정적으로 한 1950년의 조선 전쟁 발발에 수반해, 일시 중용되었지만, 여당 자민당은 요시다 시게루를 조로 한다 보수본류파벌 ‘히로이케회’의 지배하에 있었다. 청화회 인맥에 시라바와의 화살이 세워진 것은 1991년 걸프전쟁 이후이다. 청화회 정권은 자위대를 미군에 직결, 보완 시켜 중국을 억지 가능한 전력으로 하라는 워싱턴의 요청을 삼키게 한다. 반복하지만 아베 역대 최장 정권 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걸고 군사적으로는 미군과 자위대를 완전히 일체화하고 일본을 사실상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 삼았다.
하지만 워싱턴은 아베파와 그것을 둘러싼 우익집단에 대한 우려는 불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큰 우려는 일이 있을 때마다 ‘ 100% 미국과 함께 있다’고 친미 보수를 과잉으로 치장하는 아베파 속에 번성하는 천황제 강권 국가에 대한 숭배 지향에 있었다. 그들의 복고주의가 전전의 천황제 국가·군국 일본의 노스탤지어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점령 정책과 도쿄 재판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와 겹치고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제2차 아베 정권은 제1차 정권의 반성에서 그것을 거의 표에 내놓지 않고 친미 보수에 철저히 주었다. 하지만 아베 이즘은 이미 사용이 끝났다. 그 간증이 약소한 제4파벌이 되고 있던 과거의 보수 본류 「히로이케회」의 수령 기시다 후미오의 내각 총리대신에의 발탁이다. 키시다 「히로이케회」는 과거의 「경무장·경제 우선」 노선을 이어 방위비 배증, 적기지 공격 능력 유지에서는 국민의 반발을 최소한으로 억제해, 워싱턴의 생각대로 움직인다. 게다가 그 정치신조에 아베파와 같은 복고적인 국수주의는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는 CIA의 암약으로 야당 공투를 불가능하게 하고 조직을 가루로 분쇄해 소당 분립시킨 야당 세력 가운데 입헌 민주당 친미파, 국민 민주당 등을 키시다 자민과 연립시키더라도 아소파와 키시다파 을 합류시켜 오히로이케회를 형성시키더라도 '위험하지 않은 친미 보수정권'을 유지, 계속시키기 위한 눈길을 끄는 방법은 얼마든지이다.
■분출하는 반미 마그마
아베가 생전 후계자로서 가장 외롭고, 그 이란성 쌍둥이의 여동생과도 형용 가능한 울트라 우익 타카시 사나에의 총리에의 길은 아베 살해로 완전히 막혔다. 원전 전폐를 주장한 고노 타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키시다 내각은 저공 비행을 계속하면서도, 충돌을 회피할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아베파에 결집하는 일본의 보수 정치가 중에서, 상기와 같이 아베 암살을 계기로 「친미」의 위장이 벗겨져, 본래의 격렬한 「반미·혐미」「패전 부정」의 마그마가 분출해 온 것이다. 앞서 참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획득하고 향후 세력 늘어날 것 같은 참정당을 둘러싼 인맥은 아베 측근 그룹과 연결되어 있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 쇠퇴의 진인이 미국의 대일 정책의 결과라고 유권자에게 호소하고, 유튜브 채널에서는 일본 회의와 결별한 우익 언론인이 미영과 그 딥 스테이트의 실태를 폭로해 “일본의 "자립"을 호소하고 있다.
전 주 우크라이나 대사, 로스차일드나 록펠러 등의 국제 금융 자본의 모략이라는 관점에서 근현대사를 해설하는 역사가, 아베 정권의 내각 관방 참여를 맡은 경대 공학부 교수, 재워싱턴 30년의 미국 정치 평론가들이 잇달아 유튜브에 출연해 미영의 이면을 해설, 동대교양부 자치회 위원장으로서 반일공계의 분트(공산주의자 동맹)의 운동가로부터 전향해, 동대사직 후에는 진정보수 사상 를 표방하는 언론을 전개한 고 서부 매는 아베 측근 그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네오콘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자립을 강하게 호소하는 보수전향의 전 좌익만큼 시말이 나쁜 것은 없다. 
그런데 그 대미 자립한 일본은 막히는 곳 '세계에 속하지 않는 126대 연면으로 이어지는 황통을 받는 일본'이다. 1945년부터 수년간 계속된 GHQ 민생국 뉴딜러들이 지향한 '천황신앙에서 해방된 민주일본'과는 정반대이다. 그들은 아직도 황국사관에 사로잡혀 일본을 불변의 천황이 통치하는 나라로 간주하고 있다. 거기에는 민주주의에 의한 체제 전환, 권력의 교대 등 들어갈 여지가 없다. 포츠담 선언은 수락되었으나 그 내용은 타락되었다. 77년에 걸친 대미예속의 결말은 새로운 울트라 우익의 탄생이었다.
■아베파의 본심:도쿄 재판 절대 부인
아베를 대신해 그 원측 근의원들이 말하는 도쿄 재판 부인을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미국 뒤 방패를 얻어 우크라이나 동부 동버스 지역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는 2015년 민스크 합의 2를 밟은 제렌스키 정권에 대해 동버스 의 독립을 승인한 뒤 집단 안보권을 발동했다. 푸틴 러시아는 한때 대일본 제국과 겹친다.
일본이 조선이나 중국을 침략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도쿄 재판의 결과는 인정되지 않는다. 조선과는 상대의 합의를 얻은 합병이며, 식민지로 했다는 인식은 잘못. 러시아의 조선 침공이 다가오는 가운데 조선은 일본에 대해 가기로 했다. 일본은 서구형 자원수탈형 식민지 정책은 취하지 않고 조선을 일본과 같은 교육 수준, 사회자본 수준으로 하기 위해 노력했다. 조선 만주에 대한 적극 투자가 오늘 중국, 한국의 번영의 초석이 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 조선에 다한 것이다.
일본이 대동아전쟁에 유입된 가장 큰 계기는 장개석과 일본과의 길어진 전쟁이며, 시나 사변의 발단은 노조바시 사건. 이것은 중국 공산당에 의한 공격이었다. 장개석도 일본도 원래 전쟁할 생각은 없었다. 장개석은 일본과 함께 나라를 서양으로부터 지키려고 했다. 그런데 서안사건으로 국공합작을 강제받았다. 미국은 원통루트라는 형태로 버마 방면에서 국민당군에 무기·자금 지원했다. 전쟁이 확대, 장기화하고 마침내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으로 끌려간다. 미국은 장개석을 사용해 일본을 대미전쟁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민스크 합의를 반고시켜 러시아에 군사 진공시켜 대로전쟁 수행을 위해 최신예 무기나 자금을 공여할 터무니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미국. 자신들은 직접 싸우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대리 전쟁을 실시하게 하는 것은 시나 사변에서의 미국의 했던 것과 같다. "작은 나라를 응원하고 큰 나라를 깨뜨린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또한 지원 물자의 횡류. 무장조직에 걸친 무기는 무차별 테러에 이용되고 있다. 실로 무서운 것을 미국은 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미국에 같은 일을 해왔다.
우크라이나 보도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일본인이라면 당연한 일. 그런 것을 모리모토 총리는 말했다. "
■네오콘의 리얼:「친구는 불필요, 국익만 필요」